*모든 것은 내 의견이 아닌 강의를 한 선생님의 의견과 말씀이며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다.
루카치 『소설의 이론』
: 루카치 책 속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소설의 이론』에 언급된 소설도 모두 읽어봐야 한다. 주요작품은 『돈키호테』, 『감정교육』,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등이다. 세 작품 모두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이 정도는 읽어야 근대소설에 관해 언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에 대해 대충 들은 풍문이나 정보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봤자 새로운 것은 나오지 않는다. 명작들을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모든 것은 고전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우리가 평생 읽을 수 있는 작품은 기껏해야 몇 백편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
비평을 위해서는 작품을 해석,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는 기준, 즉 더듬이가 필요할 것이다. 이 기준을 얻는 루트는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흔히 우리나라의 주류 비평가들의 방식으로 쓰이고 있듯이 이론을 빌려 작품을 비평하는 것이다. 즉 이론의 틀을 빌려 작품을 그 틀에 맞게 끼워맞춰 보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쓰이는 이론은 가짜지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의 지식을 끌어와 쓰는 것 같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단 몇 줄로도 요약이 가능할 것이다. 즉 이론을 빌려와 그 이론의 진짜 맥락은 무시한 채 틀만으로 비평, 해석하려고 할 때 오류가 발생한다. 이러한 방식이 주류로서 용인되는 것은 다들 자세히 모르니 서로 더 날카롭게 비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비판하려면 비판하려는 대상을 더 잘 알아야 한다. 즉 포도주를 제대로 감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포도주를 마셔봐야 하듯이 소설, 특히 한 작가를 제대로 비판하려면 그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는 것이 옳다. 바흐친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비평이 타당한지 아닌지 평가해보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전집은 읽어봐야 하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가장 짜증날 때는 이 책을 다시는 읽지 않을 것을 알게 될 때이다. 다시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다.
『세상의 이치』, 프랑코 모레티, 문학동네

『소설의 이론』, 게오르그 루카치, 문예출판사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르네 지라르, 한길사

『미메시스』(고대, 중세편/근대편), 에리히 아우어바흐, 민음사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민음사

위 다섯 편의 이론서를 읽고 그 안의 작품들을 모두 읽은 다음에야 근대 소설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이론』, 게오르그 루카치
근대 소설에 대해 말하고 있으면서 그 끝을 말하고 있다. 근대 소설이 『돈키호테』 부터 시작되었다고 얘기하지만 그 기원을 얘기한 것은 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근대 소설의 최고점-사실상 끝-은 톨스토이라고 보았다. 즉 근대소설을 장르로써 최고로 빛나게 한 작가를 톨스토이로 보았으며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가 완성한 다음의 단계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던졌다. 루카치는 맑스주의자이지만 고전주의자였다. 루카치는 토마스 만을 최고의 작가로 평가하며 당대의 토마스 만과 견줄만 한 알레고리적인 작가 카프카는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루카치는 카프카의 문학적 역량은 인정하고 있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르네 지라르
main은 스탕달 소설이다. 스탕달의 『적과 흑』. 30년 후 책의 재판을 내면서 서문에서 '스탕달'을 언급하지 않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내용을 고백하고 있다.
『미메시스』(고대, 중세편/근대편), 에리히 아우어바흐
3000년에 이르는 서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모방의 역사
아우어바흐는 리얼 소설(사실적 재현)의 끝을 '졸라' 로 보았다. 즉 자연주의의 최고점으로 졸라를 꼽은 것이다. 졸라의 자연주의에 대한 반발은 모더니즘주의자들에 의해 빗발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