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단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때 비로소 '아 난 그런 사람이었지(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리뷰를 읽으면 내 부족함과 다른 사람의 해박함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컬렉션 에 대한 리뷰 한 편을 읽으니 내 습관 혹은 특징 하나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미야베 미유키'의 해제에서 모두 칭찬 일색이고 호평 뿐 아니라 존경의 뜻까지 읽고 있자니 세이초의 작품들을 정말 그저 받아들인 느낌이다. '해제'의 영향에서 조금 벗어나고자 항상 작품부터 읽고 해제를 읽었지만 그 그늘 아래 있었던 건 사실이다. 비판력 부족은 항상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발견하는 점이다. 일단 무조건 받아들이고 보는 것이다.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 부족하거나 조금 마음에 마음에 들지 않다하더라도 나쁜 것은 아니다. 일장일단이라고 이런 성격도 배우는 데 있어서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질 때 좋은 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부족은 부족이다. 비평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by somego | 2009/08/11 07:50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읽어야 할 책


(대출)

『파계』, 시마자키 도손
896.34 도기등 파


『이불』, 다야마 가타이
896.3508 1997 3


『아버지의 자리』, 아니 에르노
843.9 E71 아


『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하루키
896.35 촌상춘 일구


『뜬구름』, 후타바테이 시메이


『마음』, 나쓰메 소세키


*************************************************************************************************


커튼, 밀란 쿤데라 (소장)

한국문학과 그 적들, 조영일 (소장)

만엔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대출)



****급하게 생각할 것 없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읽는 것이다.

by somego | 2009/07/14 02:41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미야베 미유키 책임 편집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 작품『화차』를 읽은 것을 계기로 '이런 추리 소설도 가능하구나'를 알게 되었다. 철학 아카데미 조영일 선생님의 강의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스승 격인 마쓰모토 세이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생일 선물로 받은 출판된지 얼마 안된 따끈따끈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을 읽고 있다. 여름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일어나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을 하나씩 읽어가는 재미가 크다. 지금껏 내가 읽은 추리소설은 가짜처럼 보일 정도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추리소설에 빠지게 되었다. 확실히 마쓰모토 세이초의 추리소설에서 추리하는 것은 범인이나 사건의 주동자가 아니다. 소설은 우리에게 누가 범인인지 보여주고 시작한다. 소설에서 추리하고자 하는 것은 '누가'가 아니라 밝혀진 그 사람이 '왜, 어떻게' 사건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이다.

이는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이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는 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범인이 아니라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동기 혹은 사회적 요인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래야만 했던, 그렇게 하고 싶었던 동기나 외부적 환경이 소설의 핵심이다.

주체가 아닌 주체의 동기와 사건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제 2장 My Favorite의「일 년 반만 기다려」라고 생각된다. 이 단편소설을 읽는 순간 '턱'하고 뭔가에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이 정도는 되야 추리소설 아니겠어?'하고 작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사건의 결과뿐만 아니라 그 이면까지 들춰내는 탁월한 추리소설. 결코 독자에게 '추리 좀 해봐'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제 3의 인물이 추리해 나가는 과정을 기가 막히게 그리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해제도 읽을 만 하지만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을 읽고 나서 읽는 편이 더 낫다. 추리소설이니 미리 어느 정도 알고 읽는 것보다는 기대와 긴장 속에서 결말에 대한 어떠한 힌트 없이 공백의 상태에서 읽는 편이 훨씬 흥미롭기 때문이다. 아직 읽어나가고 있는 시점이지만 결코 어떠한 작품도 실망을 주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 다쓰고 나니 뭔가 광고에나 실릴 법한 3류 감상평 같다. 근데 확실한 건 추리소설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지난 달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중)』이 출간되었다.

by somego | 2009/07/02 23:14 | 리뷰 | 트랙백 | 덧글(0)

7월 2일 강의록

*모든 것은 내 의견이 아닌 강의를 한 선생님의 의견과 말씀이며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다.

루카치 『소설의 이론』
: 루카치 책 속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소설의 이론』에 언급된 소설도 모두 읽어봐야 한다. 주요작품은 『돈키호테』, 『감정교육』,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등이다. 세 작품 모두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이 정도는 읽어야 근대소설에 관해 언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에 대해 대충 들은 풍문이나 정보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봤자 새로운 것은 나오지 않는다. 명작들을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모든 것은 고전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우리가 평생 읽을 수 있는 작품은 기껏해야 몇 백편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


비평을 위해서는 작품을 해석,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는 기준, 즉 더듬이가 필요할 것이다. 이 기준을 얻는 루트는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흔히 우리나라의 주류 비평가들의 방식으로 쓰이고 있듯이 이론을 빌려 작품을 비평하는 것이다. 즉 이론의 틀을 빌려 작품을 그 틀에 맞게 끼워맞춰 보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쓰이는 이론은 가짜지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의 지식을 끌어와 쓰는 것 같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단 몇 줄로도 요약이 가능할 것이다. 즉 이론을 빌려와 그 이론의 진짜 맥락은 무시한 채 틀만으로 비평, 해석하려고 할 때 오류가 발생한다. 이러한 방식이 주류로서 용인되는 것은 다들 자세히 모르니 서로 더 날카롭게 비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비판하려면 비판하려는 대상을 더 잘 알아야 한다. 즉 포도주를 제대로 감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포도주를 마셔봐야 하듯이 소설, 특히 한 작가를 제대로 비판하려면 그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는 것이 옳다. 바흐친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비평이 타당한지 아닌지 평가해보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전집은 읽어봐야 하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가장 짜증날 때는 이 책을 다시는 읽지 않을 것을 알게 될 때이다. 다시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다.

『세상의 이치』, 프랑코 모레티, 문학동네
















『소설의 이론』, 게오르그 루카치, 문예출판사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르네 지라르, 한길사














『미메시스』(고대, 중세편/근대편), 에리히 아우어바흐, 민음사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민음사
















위 다섯 편의 이론서를 읽고 그 안의 작품들을 모두 읽은 다음에야 근대 소설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이론』, 게오르그 루카치
근대 소설에 대해 말하고 있으면서 그 끝을 말하고 있다. 근대 소설이 『돈키호테』 부터 시작되었다고 얘기하지만 그 기원을 얘기한 것은 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근대 소설의 최고점-사실상 끝-은 톨스토이라고 보았다. 즉 근대소설을 장르로써 최고로 빛나게 한 작가를 톨스토이로 보았으며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가 완성한 다음의 단계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던졌다. 루카치는 맑스주의자이지만 고전주의자였다. 루카치는 토마스 만을 최고의 작가로 평가하며 당대의 토마스 만과 견줄만 한 알레고리적인 작가 카프카는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루카치는 카프카의 문학적 역량은 인정하고 있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르네 지라르
main은 스탕달 소설이다. 스탕달의 『적과 흑』. 30년 후 책의 재판을 내면서 서문에서 '스탕달'을 언급하지 않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내용을 고백하고 있다.

『미메시스』(고대, 중세편/근대편), 에리히 아우어바흐
3000년에 이르는 서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모방의 역사
아우어바흐는 리얼 소설(사실적 재현)의 끝을 '졸라' 로 보았다. 즉 자연주의의 최고점으로 졸라를 꼽은 것이다. 졸라의 자연주의에 대한 반발은 모더니즘주의자들에 의해 빗발쳤다.

by somego | 2009/07/02 22:43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외투, 코 - 고골 (2)

<외투, 코> 고골리 범우문고


*코
아침에 눈을 뜬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부인이 주는 아침 식사 빵 속에서 코를 발견한다. 코의 주인은 그가 일주일에 두번 면도를 해주는 팔등관 코발로프의 것이었다. 여기서 웃긴 점은 부인의 반응이다. 면도를 할 때 손님의 코를 너무 세게 잡아당겨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남편을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코를 가지고 나가 해결하고 오라며 영문도 모르는 남편을 내쫓는다. 기가 막힌 건 코발로프도 마찬가지이다. 눈 뜨고 일어나니 코가 없다. 손수건으로 얼굴 정확히는 코가 있던 부분을 가리고 밖으로 나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수건은 내리고 거울을 보지만 욕을 하며 침을 뱉을 뿐이다. 밖에서 그는 자신의 코를 발견하게 된다. 관리처럼 제복을 차려 입고 마차를 타는 '코'이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지만 결국 코를 찾는 데는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관이 찾아와 이반이 몰래 버리려던 '코'를 가지고 찾아와 주인에게 돌려준다. 이제는 어떻게 다시 코를 제자리에 붙일지가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되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어느 날 눈을 뜨니 다시 코는 제자리에 돌아왔고 그는 다시 원래 하던 생활을 하게 된다.


근래에 읽은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당황스럽고 기괴한 사건은 잠에서 깨어 눈 뜬 순간 일어난다. 이발사는 아침으로 먹는 빵 속에서 코를 발견하고(직업의 특성상 누구의 코인지 단번에 알게 된다) 코발로프 소령은 눈 뜨자마자 자신의 코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 코가 사라지고 마치 팬케이크처럼 반들반들해진 얼굴은 상상하는 순간 웃음을 유발한다. 어떻게 소령의 코가 이발사의 아침 식사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일까. 더 웃긴 건 그 코가 관리인 척 옷을 차려입고 마차를 타고 성당에도 가고 동네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다. 어떻게 '코'가, '코' 주제에 사람 흉내를 내며 돌아다닌다는 것일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특히 나의 감상을 대신해주는 것 같아 그대로 옮겨본다.

 도대체─어떻게 코가 구운 빵 속에 들어가 있었을까?
 또 이반 야코블레비치 자신은 어떻게 …… 아니, 난 그런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러나 더욱더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 글을 쓴다는 자들이 어떻게 이런 주제를 다룰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것은 전혀 이해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마치 ……아니, 아니, 전혀 모르겠다.
 첫째, 이 사건을 주제로 해보았자 국가에 전혀 도움이 안되고, 둘째로는 …… 그러나 둘째도 역시 하등의 이익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야 물론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비현실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래도 잘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 속에는 확실히 무엇인가가 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이와 같은 사건이라는 것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법이다 ─ 흔치는 않겠지만 있을 수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만약 이것이 작가의 진심이라면 작가 역시 소설의 비현실성을 인정하고 있다. 약간은 변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역시 눈길이 가는 부분은 붉게 강조해 놓은 곳이다. 소설은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익을 얻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뭔가 있는 걸 알겠고 놓을 수 없는 건 알겠다. 있을 수 없는 일을 다뤄도 뭔가 있기 때문에 놓을 수가 없다. 작가가 이렇게 소설 속에서 소설에 대해 말하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 단순한 감상과 담론이 없는 부족한 글이지만 조금 더 공부하고 보충할 것을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by somego | 2009/07/02 02:23 | 리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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